그리스 은행영업 중단연장, 우리경제 무엇을 배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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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권병찬 작성일 15-07-14 00:2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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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은행영업 중단연장, ECB 긴급유동성지원 동결
유럽중앙은행(ECB)이 13일(현지시간) 그리스 협상타결 소식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를 동결하기로 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ECB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동결 사실을 전했는데 앞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은 이날 그리스 해법을 놓고 약 17시간 동안 밤을 새가며 토론을 진행한 끝에 합의안을 마련했으나 ECB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ECB의 ELA 동결로 그리스의 은행 영업 재개는 당분간 힘들 것 같다고 전했다. ECB의 동결 결정은 그리스가 15일까지 합의안을 법제화하도록 한 유로존의 요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리스 정부 재정 관계자는 소식이 전해진 뒤 은행 영업 중단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은행 영업 중단은 연장될 것"이라면서 언제 영업이 재개될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한 은행 관계자도 은행 영업 중단이 우선 2일 더 연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무부 차관을 만난 뒤 "정부는 오는 16일 은행 영업 재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15일 상황을 다시 평가한 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스에서는 지난 29일 채권단과의 구제금융 협상 결렬 이후 디폴트 우려로 은행 예금 인출이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ECB의 ELA 한도 유지로 은행 돈줄이 막히자 은행 영업 중단을 선언하고 자본통제에 돌입했다. 현금인출기 운영도 일시 중단 후 재개되기는 했지만 일일 인출액은 60유로로 제한된 상태다. ELA란 시중은행이 자금난을 겪을 우려가 있는 경우 유로존 각국 중앙은행이 ECB의 승인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지원제도이다.
한국경제, 그리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나?
그리스 사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빚어낸 위기이기도 하지만, 한국경제에 주는 교훈도 적지 않다. 한국경제가 그리스 사태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문제들을 방치하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리스 사태로부터 배울 점들을 전문가들의 의견으로 살펴본다.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 정말 문제>
국제 채권단이 그리스에 구제금융 긴축 프로그램을 제시하며 중점적으로 요구한 것은 연금을 비롯한 복지제도 개혁이다. 그리스에는 총 130여 개의 연금이 난립해 있으며 연금 지급액 수준도 높다. 조기 퇴직한 국영기업 직원에게는 근무연수와 상관없이 정년퇴직 연금을 주는 등 방만하게 운영됐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리스의 경우, 1980년대 민정 이양 이후 신민당과 사회당이 표를 얻기 위해 기초보장제도는 죄다 도입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파블로스 엘레프데리아디스 옥스퍼드대 연구원은 텔레그래프 기고문을 통해 "영국 등 다른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제도를 세웠지만 그리스는 내전과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1980년대에 급격히 복지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갈수록 정치권이 복지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유권자가 좋아하는 표퓰리즘적 제도를 내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복지제도는 그리스 사태에서 확인됐듯이 단기적으로는 '사탕'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제에 '독약'이다. 우리의 경우, 현 정부도 대선 당시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공약했지만, 재원확보 등의 문제로 인해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10만∼20만원을 차등지급하는 안으로 후퇴하기도 했다. 야당은 현정부의 복지수준이 부족하다면서 복지확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재원 조달 문제는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복지의 절대 수준도 높다고 할 수 없지만, 복지제도는 후진이 어렵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채무조심>
그리스의 국가 부채 규모는 총 3천240억 유로, 국내총생산(GDP)의 1.7배에 달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부채 수준이 GDP의 1.2배인 것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다. 그리스의 국가 부채는 이 나라 경제의 발목을 붙잡는 덫이 됐다. 부채가 많은 만큼 국가 신용등급은 떨어졌고 국채 금리는 올랐다. 가뜩이나 재정적 여유도 없는데, 많은 돈을 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국제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현재 그리스 국채 금리는 연 15%에 달하며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그리스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도 재정건전성이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한국경제의 경우, 최근 3년 연속 예상보다 적은 세금이 적게 걷히는 세수결손이 발생했다. 세수는 부족한데 지출은 늘어나면서 국가부채 규모는 증가하고 있다. 우리경제의 국가부채는 2013년 480조3천억원에서 2017년 610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가계 부채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 가계 부채액은 빠르게 늘어 총 1천100조원을 넘었다. 또 부채 비율 등을 따져봤을 때 약 112만 가구가 채무를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국은행은 분석했다.
<부정부패는 경제만악의 근원>
국제투명성기구는 "그리스의 일부 공무원 사회에서는 수십 년간 투명성과 효율성이 결여됐고 그 결과, 뇌물을 요구하고 받는 관행이 생겼다"며 "불법 행위를 한 공무원 중 2%만 징계절차를 밟았을 정도로 처벌도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탈세를 더욱 부추겼다. 해운업으로 돈을 번 거부는 사업등록지를 옮겨 조세를 회피했고 관광업을 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는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아 세금을 탈루했다.
멀쩡한 사람이 시각장애인 행세를 하며 장애연금을 타 가고, 유족이 사망자 명의의 연금을 계속 받는 등 부정수급으로 복지 재정도 줄줄 샜다. 세금은 제대로 걷히지 않고 눈먼 돈은 계속 나가니 재정 적자가 심화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14년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그리스는 69위, 한국은 43위였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고소득 전문직 등이 국세청 사후검증으로 440억원의 부가가치세를 추징당하는 등 여전히 우리나라도 투명사회를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성완종 사태에서 확인했듯 현재에도 한국 정치권의 뇌물수수 등 부정부패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제조업을 키워야 산다>
그리스에서 1차산업 비중은 GDP의 3.5%, 제조업 비중은 5.7%에 그치고 있다. 나머지 90%가 관광과 해운업 등 서비스업이다. 제조업 강국 독일 등이 유로 통합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는 동안 그리스는 수입 의존도를 더욱 키웠다. 그리스의 취약한 제조업은 위기 상황에서 운신의 폭도 좁혔다. 환율 조정을 통한 해법을 모색할 수 없었던 그리스로서는 물가와 임금 하락만이 유일한 대안이었으나 이러한 조치가 효과가 발휘하려면 제조업 기반이 튼튼해야 했다.
아일랜드가 경기 침체를 극복한 데에는 긴축 못지않게 기업 수출 경쟁력 상승이 영향을 미쳤고 한국 역시 원화 약세로 따른 기업 수출 증가가 IMF 위기 극복의 핵심 요인이다. 그러나 또다시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우리도 환율 평가 절하에 따른 극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당시보다 경제 성장률도 낮아진 데다 제조업이 갈수록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마킷에 따르면 지난 5월 한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8로 조사 대상 24개국 중 네 번째로 낮았다.
<공공부문의 무분별 확대, 비대정부 그만해야>
1981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공공부문 확충을 내걸고 당선된 이후 그리스 공공부문은 비대해졌다. 제조업 기반이 없어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는 그리스로서 공무원 확충은 손쉽게 실업률을 줄이는 방법이었지만 정부 재정에는 큰 부담이 됐다. 퇴직 후에도 보수의 95% 이상을 연금으로 지급했다. 그리스 일간 그릭리포터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그리스의 공무원 연금 수급자 수는 46만8천422명이고, 이들에게 지급되는 연금은 60억 유로에 달했다.
그리스보다 인구가 4배 이상 많은 한국의 공무원연금 수급자수 40만 명 수준보다 많다. 공공부문은 민간부문보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탓에 긴축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도 힘들었다. 한국은 정부 수립 이후 공무원 수가 꾸준히 늘어 지난해 100만 명을 넘어섰다. 공공서비스에 차질이 없도록 필요한 곳에는 공무원을 충원해야 하겠지만 한번 늘린 공무원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재정 전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병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