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25시

우병우, ‘도나도나 사건’에도 연루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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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편집국 작성일 16-09-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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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도나도나 사건에도 연루 의혹

대법원 2(주심 이상훈 대법관)8일 양돈업체에 투자하면 최고 연 60% 수익을 주겠다고 속여 피해자 1만여명으로부터 2400여억원을 끌어모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도나도나' 대표 최모(69)씨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2400여억원 유사수신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씨는 2009년 초 양돈업체인 '도나도나'를 설립한 뒤 20094월부터 20134월까지 "투자받은 돈으로 어미 돼지를 사면 새끼 20마리를 낳을 수 있고, 매년 투자금의 24%에서 60%까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최씨가 이 같은 방식으로 4년간 끌어모은 돈은 2429억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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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회사 홈페이지에 자신을 '한평생 돼지를 키우며 살아온 양돈 전문가'로 소개했고, 일부 회사 임원은 '미국 유명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출신' 등 금융 분야 전문가로 소개됐다. 이들은 투자금 모집 과정에서 "양돈(養豚) 농가와 도시의 투자자들이 상생하는 새로운 투자 모델"이라고 광고하기도 했다. 피해자들 가운데는 퇴직금이나 자식의 결혼 자금으로 모아 둔 돈을 투자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도나도나는 투자자들의 돈을 받아 전국에 50곳가량의 농장을 사들였고, 국내 3위의 양돈업체로 발돋움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도나도나 측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는 징후가 2011년 무렵부터 나타났다. 도나도나 측이 약속한 수익금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자들의 진정이 검찰과 경찰에 접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2012년까지 검찰과 경찰은 '피해 사례가 많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수사에 착수하지 않거나 내사종결(불기소) 처리했다. 검찰은 피해 신고가 갈수록 늘어나자 2013년에야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른 수사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그해 11월 최씨 등이 실제 키운 돼지는 계약의 60%에 불과했고, 키우는 돼지를 무단으로 담보 잡혀 저축은행들로부터 대출을 받은 혐의 등이 있다며 기소했다. 최씨 등이 사들인 돼지 농장 가운데는 닭을 키우는 곳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거물급 전관(前官) 변호사들을 대거 선임했다. 검사장을 지낸 홍만표 변호사,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노환균 전 고검장 등이 최씨 변호를 맡았다. '법조비리'로 구속기소된 홍 변호사는 5억원 안팎의 변호사비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우 수석도 억대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심과 2심은 최씨의 여러 혐의 가운데 회사 자금 4억원을 횡령한 것 등만 유죄로 보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핵심 혐의였던 '2429억 유사수신'에 대해서는 "실제 돼지를 키우는 양돈업을 수익 모델로 투자자들을 모았기 때문에 유사수신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돼지를 키운다는 것은 명목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높은 이자를 쳐주겠다면서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받아간 (불법적) 유사수신행위"라고 했다.

우병우, 어떤 성향의 인물인가?

현직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대상이 되는 초유의 사태에서도 우 수석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우 수석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지만 수사를 받는 사람이 수사 상황을 보고 받는 위치에 버티고 있는 기형적 형국을 고수하고 있다. ‘리틀 김기춘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단기간 내 청와대 실세로 자리매김했고, 현재는 대통령의 남자로 불리며 태풍 속 무풍지대에 서있는 우병우, 그는 누구인가?

우 수석은 1967128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교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주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다. 우 수석을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가 소년등과(少年登科 :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 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지난 1987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세였다. 1990년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그가 검사로 임관할 때 성적은 2등이었다. 그는 초임을 서울중앙지검에서 보냈다. 법조 관계자는 우 수석은 어릴 적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만큼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감 있던 모습을 보였다. 이게 주변을 불편하게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래서 젊은 시절 우 수석에게 깁스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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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수석의 검사 시절 평판은 일관된다. ‘업무 능력은 최고지만 인간적인 관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평이다. 우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와 형사6부를 거쳐 대구지검 경주지청, 창원지검 밀양지청, 제주지검 등에서 근무했다(19901998). 이 시기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 업체 55곳에 이어 세균폐수를 방출한 을지병원·백병원·차병원·중대부속병원을 적발했다. 특히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경주대 설립자인 김일윤 전 민자당 의원을 학교공금 53억 원 횡령 혐의로 구속해 주목받았다. 우 수석과 함께 근무를 했던 전직 검찰 관계자는 우 수석은 피의자를 소환해서 조사할 때 사적인 말은 일체하지 않는다수사에 있어서도 장난을 치는 법이 없고 완벽을 추구하는 독종이라고 평했다.

우 수석은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로 접어든다. 법무부 국제법무과(1999)를 거쳐 지난 2001년 서울 동부지청 형사6부에 배치됐던 그는 200112월부터 송해운, 윤대진 검사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차정일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활약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가장 인정받는 특검으로 평가되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당시 신승남 검찰총장 동생을 구속하며 신 총장의 조기퇴진을 가져왔다.

우 수석은 로비가 통하지 않는 검사로도 유명했다. 2003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 시절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우 수석은 사적인 만남을 극도로 경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삼성그룹은 특수2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람을 붙였지만 유독 부부장이던 우병우만 삼성그룹 사람들을 절대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많이 회자됐다. 우 수석은 수사 솜씨에 있어서 누구보다 탁월했지만 윗선과의 갈등은 최대한 피하는 성격이라는 평도 받는다. 월등한 능력에 비해 강단은 다소 부족한 검사였다는 얘기다. 이러한 성향이 상명하복검사 동일체 원칙으로 돌아가는 검찰 조직 문화에 특화된 처세술로 작동했다는 해석이다.

우 수석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대구지검 특수부장 때 배기선 열린우리당 의원의 수뢰 사건을 수사했다. 앞서 같은 사건에 연루된 전 한나라당 의원을 1억 원 수뢰 혐의로 구속한 상황이라 배 의원 구속영장 청구가 점쳐졌다. 당시 우 수석은 배 의원에 대한 구속 수사 의견을 올렸지만, 불구속 수사 지시를 내린 검찰의 고위 인사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우 수석은 배 의원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결한 뒤 다음 인사에서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으로 영전했다. 검찰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탄탄대로를 달리던 우 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로 브레이크가 걸린다. 지난 200812월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를 구속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009년 초 검찰 정기인사에서 대검 중수1과장 자리에 우 수석을 앉혔다. 우 수석은 2009430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노 전 대통령을 대검 청사 11층에 마련된 특별조사실에서 직접 조사했고, 노 전 대통령은 5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사표를 냈지만 수사 실무를 맡았던 우 수석까지 책임론이 당장 밀려오지는 않았다. 다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무리한 수사에 일조했다는 이력은 이후 검사의 꽃인 검사장 승진을 가로막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 수석은 인천지검 부천지청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거친 뒤 지난 20135월 검찰을 떠났다. 2012년과 2013년 두 해에 걸쳐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검찰 출신 정치권 관계자는 특수통 검사로서 앞길이 밝았는데 노 전 대통령 수사에 참여했다는 점이 검사장 승진을 어렵게 했던 것으로 안다이런 좌절은 권력에 대한 갈증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수석은 20135월 우연히 홍만표 법률사무소10층에 위치한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 빌딩에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변호사 우 수석은 모교가 있는 영주의 재경 향우회에 얼굴을 내미는 등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둔 듯한 행보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 수석은 변호사 개업 1년여 뒤인 20145월 청와대 개각에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이는 법조계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인사였다. 그만큼 우 수석 청와대 입성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제기됐다. 정윤회 씨는 물론,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배경으로 거론됐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없었다. 다만 뒤이어 6월에 임명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변호사 시절 우 수석과 함께 도나도나 다단계 사기사건을 수임한 인연이 있다.

우 수석이 검사장을 거치지 못했기에 발탁됐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들렸다. 박 대통령이 정권 초기부터 철저한 기수문화로 그들만의 리그를 꾸려온 검찰 조직을 흔들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현 정부 첫 민정수석인 곽상도 전 수석(56·연수원 15)도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56·연수원 14)이나 황교안 법무부 장관보다 후배였고, 검사장을 거치지 못했다. 우 수석은 청와대에서 일을 하며 김기춘 전 비서실장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등 까다로운 일들을 깔끔히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문서유출 사건 당시 우 수석은 상관인 김영한 전 수석을 제치고 김 전 실장에게 직보하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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